짓는 마음

2026. 9. 1.

생각의 자립

AI가 생각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비슷한 생각만 반복해서 보여주는 시대입니다. 책에서 마음에 남는 대목만 가려 옮겨 적던 정약용의 초서(鈔書)처럼, ​마음에 닿은 문장을 하나씩 채집해 나만의 생각도감을 만드는 앱, ​meetzool을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장에서 시작해 조금씩 내 생각을 세워가는, ​생각의 자립을 위한 도구입니다.

문장 채집

첫째 · 놓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책을 읽다가, ​음악을 듣다가, ​영화나 인터뷰를 보다가 마음이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직접 적거나, ​사진을 찍어 글자를 인식해 담습니다. 그 문장을 놓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저장에 필요한 것은 문장 하나뿐입니다.

태그도 출처도 나중에 붙일 수 있습니다. 채집의 순간에 요구를 얹지 않습니다.

생각 도감

둘째 · 다 읽지 못해도 괜찮다

문장에 태그를 붙여두면 관심사별로 모입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보면, ​그동안 무엇에 마음을 두고 살았는지가 보입니다. 책을 다 읽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그때 건져둔 한두 문장이 쌓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생각도감이 됩니다.

잃는 것은 저장이 아니라 다시 마주침입니다.

그래서 홈은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문장이 먼저 나타나는 곳입니다.

생각의 자립

셋째 · 남의 문장에서 시작해 내 생각을 세운다

채집한 문장은 처음에는 전부 남의 말입니다. 그것을 다시 만나고, ​곁에 두고, ​그 옆에 나의 생각을 한 줄 적는 동안, ​남의 말은 조금씩 내 언어가 됩니다.

이 앱은 답을 주지 않습니다. 무엇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고, ​당신의 문장을 해석해 주지도 않습니다. 알림을 보내 불러내지도 않습니다. 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 당신이 고른 것을 잃지 않게 하고, ​잊을 만할 때 다시 보여주는 것.

답이 먼저 도착하는 시대에, ​잠깐 멈추어 자기만의 이유를 만드는 일. 그 일을 돕는 도구이고자 합니다.

마주 앉는 자리

그리고 · 바라는 것

각자의 화면에 쌓인 문장이 언젠가 마주 앉는 자리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문장을 골랐다는 걸 알아차리고, ​함께 웃는 자리라면 더 좋겠습니다.

서로의 생각을 평가하거나 정답을 정하는 자리는 되지 않기를.

그래서 공개 피드도, 좋아요도, 팔로워 수도 두지 않았습니다. 건네기는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문장 하나를 전하는 일입니다.